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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中國文化(46)
중국 고미술품 전문가인 백산 김덕기(栢山 金悳基) 선생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중국문화’ 연재칼럼을 게재합니다.
중국의 달항아리
鬼谷子下山图 大罐
높이29.5cm 口径21cm 腹径33cm 바닥20cm
우리는 수입 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청화문식을 마음대로 그릴 수 있었던 시기가 한번도 없었다.
백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기 시작할 즈음 들이닥친 임진왜란. 병자호란은 전국을 아사 직전으로 내몰았다.
좀 엉뚱한 발상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달항아리는 물자가 귀했던 시절의 산물이 아닐까?
돈으로 바꾸어야 하는 재료는 그 무엇도 구할 수 없었던 탓에 그냥 항아리를 만든 후 듬뿍 백유를 발라 구워낼 수 밖에 없었던 단순미의 결정.
그러다 텅 빈 공간이 허전하니까 铁彩로 빗자루로 쓸어내듯 꽃나무, 풀잎이나 용、호랑이라도 그려 본 것이 백자 铁画요, 铁彩였으리라.
반면에 중국은 일찍이 남북조시대 (대략 380~580)부터 다양한 채색자기를 굽기 시작했다.
청화자기는 唐代부터 烧制하기 시작하여 元代에는 이미 숙련된 청화자기를 대량으로 생산하였으며 품질도 아주 좋았다.
동시에 元은 경덕진에다 전국 유일의 도자관리 기구인 浮梁瓷局을 설립(至正15年, 1278)하여 어기창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일반적으로 元靑華는 주로 원대 말기(1341~1368)의 至正青華를 가리키며 세상에 남아있는 수량은 극히 적다.
이는 명나라 초기 통치자들이 이민족의 문화를 야만스럽게 철저히 훼손한 원인도 크다.
元은 100년도 안되는 짧은 왕조였으나 원청화는 중국자기 중에서 가장 빛나는 창소품(創烧品)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명、청、민국시기까지 元청화 자기를 모방한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다.
오랑캐의 문화라 해서 등한시하며 함부로 방치하여 그 당시 자료와 유물이 희소한데다 자기에 款識가 적혀있는 예도 드물어 방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원청화는 대량 수출로 인해 본토보다는 오히려 중동이나 동남아 지역에 많이 남아있는 편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원청화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은 터키의 <The kapi Palace>와 이란의 <국립고고 박물관>이다.
이제 표제의 실물을 한번 감상해 보기로 하자.
(1) 높이 29.5cm 口径21cm 腹径33cm 바닥 20 cm
(2) 이름하여 “元青華 鬼谷子下山图大罐”이다.
(3) 넓은 圈足. 直口에 목이 짧으며, 입술이 좀 두텁고, 부드러운 원형의 어깨 以下는 점점 넓어지다가 복부 아래부터 점차 좁아져 바닥에서 약간 밖으로 경사를 이루었다.
수입코발트 안료를 사용하여 青華纹飾을 4층으로 나누어 그렸는데 1층은 경부(颈部)에 물결무늬를 장식하였고 2층 어깨 부위에는 缠枝 모란문을, 3층은 복부에 “鬼谷子 下山” 의 주제문식, 4층은 하부 12葉의 变形莲瓣纹 안에다가 八宝를 새겨 넣었다.
주제 문식 “귀곡자 하산도”는 손빈(孙膑)의 스승 鬼谷子가 齊나라 사신 소대(蘇代)의 간청으로 산에서 내려와 燕나라에 의해 적진에 빠진 제나라 명장 손빈과 독고진(独孤陳)을 구해준 이야기를 묘사하였다.
귀곡자는 단정하게 범 한 마리와 표범 한 마리가 끄는 수레에 앉아있고 몸은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태도가 태연자약한 것이 마치 신선처럼 그의 뛰어난 전략, 전술의 재능까지도 표현되고 있다.
차 앞의 두 보졸(步卒)이 긴 창을 들고 길을 인도하고 있으며, 한 청년 장군은 위풍당당 말을 타고, 손에 든 군기 위에는 “鬼谷” 이라는 두 글자가 보인다.
소대(蘇代)는 말을 타고 제일 뒤를 따르고 있다. 일행은 산과 나무. 돌과 함께 어우러져 장엄하고 아름다운 산수인물화를 보는 듯하다.
전체 청화문식은 색깔이 농염하고 화면이 포만(饱满)하며 밀도가 적당하게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인물 부각이 유창하고 자연스러우며 기품이 있는데다 아주 정교하고 완벽하다.
“귀곡자하산도 대관”처럼 이렇게 인물 이야기를 그린 원청화 罐은 세상에 전세된 것이 지금까지 7점 뿐이다.
도쿄 이데미쓰 미술관 소장의 “昭君出塞罐(높이 28.4cm)”, Pegasus Trust 소장의 “三顧茅廬罐(높이 27.6cm)”, 安宅美术馆 소장의 “周亚夫屯细柳營罐(높이 27.7cm)”, 미국 보스턴관 소장의 “尉遲恭救主罐 (높이 27.8cm)”, 아시아의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西厢记 焚香罐(높이 28cm)”, 伊萬里미술관 소장의 “百花亭罐(높이26.7cm)” 그리고 2005년 7월 12일 런던 크리스티(佳士得) 경매회에서 1400만 파운드로 낙찰된(당시 중국 예술품의 세계최고 경매 기록을 세운) 이 “鬼谷子下山图罐” 등이 전부다.
그러니 원청화 人物纹罐은 값이 금보다도 훨씬 비싼 것이다.
▲예술품을 설명하고 있는 백산 김덕기 선생
◎ 적형적인 원청화 자기의 감별은 주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특징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1. 일반적으로 태체가 중후하고 손에 올리면 감각이 부드럽다.
2. 기물 바닥에 釉가 없으며, 대부분의 기물 바닥에 선명한 旋纹이 있고 跳刀痕과 함께 모래가 묻어 있다.
3. 청화색상은 농염한 것과 灰澆, 두 가지가 있으며 모두 铁锈斑이 있다.
4. 圈足外墙에 비스듬이 깎아낸 모양이 보이며 왕왕 釉에 잠긴 손으로 기물을 잡은 손가락 흔적도 있고 露胎부분은 褐红色을 띠는 수가 있으며 대형기물은 無釉바탕에 비교적 큰 면적의 유약 덩어리가 묻어있다.
5. 부분적으로 만든 다음 이어 맞추었으며 바닥에 이은 흔적이 선명하고 특히 罐종류의 内壁유면은 고르지 못하다.
6. 매병의 주둥이는 모두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梯形이다.
7. 高足杯의 杯身과 족부는 湿胎접합을 채용하였고 足内의 끝부분에는 釉가 없다.
《鬼谷子》
본명 王詡. 별칭 王禅. 王利. 호 玄微子
생존시기: 춘추전국 (출생일 미상: 대략 BC 510~220)
출생지: 衛国(하남 泣縣) 혹은 魏国(하북 臨漳) 또 일설에는 陳国(하남郸城) 사람이라고도 한다.
저술: 〈鬼谷子〉、〈本径陰符七術〉
주요성취: 道教祖师之一. 종횡가 創始. 창건 鬼谷门派 兵法大成.
신앙: 道家, 스승: 老子, 제자:孙臏,龐涓,蘇秦,张儀,商鞅 등.
▲문화예술 교류를 하고 있는 백산 김덕기 선생
楚나라의 재상을 맡은 적이 있는 귀곡자는 중국역사상 신비로운 색채가 있는 인물로 千古奇人이라 불리고 있으며 鬼谷门派를 창건하였다.
修养으로 (강하고 유연함을 조절) 심리를 통찰하고 합종연횡에 통달한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식이 풍부하여 百家学问에 정통한 從横家의 시조이면서 도가、 사상가、 모략가、 병가、 음양가、 외교가、 법가、 발명가、의학가이며 위대한 교육자이다.
귀곡선생의 지혜는 蘇秦, 張儀, 孙臏, 방연(龐涓), 상앙(商鞅), 여불위(吕不韋), 백기(白起), 이목(李牧), 왕전(王翦), 감무(甘茂), 악의(樂毅), 모수(毛遂), 조사(赵奢)등 500여명의 걸출한 인물들을 교육하였다.
전국시대 제후가 並起하는 대변혁의 시대에서 이상과 신앙을 계승하는 기이한 인재였던 귀곡자 王禅은 임금을 지키고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 길에 들어서 손빈、방연、소진、장의、상앙、모수 등 원대한 포부가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용감하게 정의를 지키고 천하를 구하였다.
2천여년 이래 병법가들은 그를 성인이라 존경하였고, 종횡가들은 시조로, 점쟁이들은 师祖(스승의 스승)로, 道家들은 그를 王禅老祖로 섬겼다.
그는 鬼谷에 은거하면서 鬼谷子라 자칭하였다.
“鬼”는 음흠하고 교활하다는 뜻이 아니고 기이하고 신비로우며 지혜가 뛰어나다는 뜻이다.
작품유물 제공 및 해설: 栢山金悳基
-울산 출신 부산사람. 동래고. 고려대 농경제과 졸업. 철학박사
-1994년 中国創業投資 1세대 기업인
-현재 중국 칭다오에서 기업경영과 고미술 연구에 정진하고 있으며
韩·中文化 단체 및 중요대학에서 열강
-부산에서「八金山美術館」을 운영
동양 3국의 서화, 도자, 금동기 등을 무료 감정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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