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中国文化63, 변혁기를 넘어선 張曉剛 장샤오강, 백산 김덕기 선생칼럼, 중국고미술품(서화,도자기,금동기), 중국도자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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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中國文化(63)
중국 고미술품 전문가인 백산 김덕기(柏山金悳基) 선생이 독자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중국문화’ 연재칼럼을 게재합니다.
변혁기를 넘어선 張曉剛
장샤오강 張曉剛 (1958~ )
운남성 昆明에서 태어나 1982년 사천성 미술학원 졸업. 北京 정착
1990년대 중기부터 국내외 전시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혁명시대의 집체 심리에 대한 기억과 정서를 회색빛으로 표현한 작가.
전체주의화 된 사회 속에서 개인과 가족의 의미를 묻는 ‘동지’, ‘대가정’, ‘혈연’ 시리즈와 사회적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지식인의 고뇌를 담은 忘却과記憶 연작 등으로 유명하다.
흑백증명사진 이미지 속의 공허한 눈빛의 인물들은 자기 부정과 상실을 경험한 동시대 지식인의 우울한 초상이다.
1997년 영국 Coutts 국제예술기금회에서는 ‘아시아 당대 예술가상’을 수여하였고, 그의 작품<生生息息之愛> 3連作은 2011년 4월 홍콩 소더비 춘계경매에서 7906만불의 최고가를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중국의 ‘文化大革命’은 국가와 인민들에게 엄청난 재난을 가져다 준 내란으로,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어떤 의미로 보아도 혁명이나 사회진보가 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정치투쟁만 일삼아 온 한 지도자의 착오로 경제발전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국가의 지도체계를 좌편향으로 몰아가는 바람에 파괴만 있었지 복구 없는 암흑의 10년 이었다. 거리마다 마오(毛)주석이 말한 어록이 게재되었고, 교차로와 공원마다 확성기가 설치되어 마오쩌뚱의 사상을 방송했다.
각 가정은 물론이고 열차와 버스, 자전거와 택시에도 옆면에 마오의 사진을 붙여야 했다. 자살한 사람도 있었고 살해된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불구가 되거나 평생토록 치유되지 못할 정신적 상처를 입은 사람들도 많았다.
희생된 사람의 수는 수백만이 넘었고, 경제를 내팽개치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사(餓死)했는지, 또 홍위병들에 의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했는지는 통계조차 없었다.
적폐청산에 신바람 난 철없는 홍위병들은 패거리를 지어 몰려다니며 초가(抄家, 남의 집 뒤지기)등을 일삼고 돌아다녔다. 붉은 깃발, 붉은 완장을 차고 전국을 무리 지어 다니며, 사람을 때려죽이고, 지방의 사찰과 문화재를 파괴했다.
그 당시 중국의 화가들은 붓을 든 선전꾼 신세였다. 화폭엔 마오쩌뚱, 군인, 농민, 소수민족 같은 이념적인 소재만 허용되었을 뿐 순수한 예술적 상상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장샤오강(張曉剛) 역시 그런 살얼음판의 시대를 움츠리며 걸인처럼 살아 온 세대였다.
1976년 혁명이 끝나고 꽁꽁 묶였던 붓이 해방되자 화가들의 관심은 폭압이 할퀴고 간 상처로 급선회했다. 전체주의 그늘아래 상처받은 개인의 내면이 작품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독특한 중국미술 장르가 “상흔(傷痕)미술”이다.
이 사조(思潮)는 혁명 때 저항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쓰촨(四川)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샤오강은 윈난(云南) 쿤밍(昆明) 출신이지만 서남지역 최고의 미술학부인 쓰촨미술대를 졸업했다.
쿤밍에 단 한 명의 정원을 할애한 쓰촨미술학원 입시를 통과했지만 傷痕, 鄕土미술을 추구한 그는 설 자리가 없었다.
아무리 유명한 인물도 영악한 인간세상의 큰 범주에서 보면 미약한 존재 한낮 고뇌하는 인간일 뿐인 것이다.
그도 별수없이 낮에는 화가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미공(美術工人)’의 신분으로 싸구려 그림을 그리다가 밤이나 주말이 되면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는 이중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들은 점점 중국 미술계의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했다. 미친 듯이 책을 읽고, 각종 모드니즘을 실험했으며, 미협의 전시에 대항하고, 각양각색의 예술동지들과 교류했다.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자신이 현대예술을 하는 예술가라는 사실에 자만해서 제도권 예술과 그 허위성을 우습게 보고, 경박함과 보수성을 조롱했으며, 행동의 의미를 추구하고, 감정의 가치를 존중했다.
미친 듯 술을 마시고, 모임을 열고, 터질듯한 격정을 그림 속에 쏟아냈다. 혹독한 현실은 분노의 청년을 피안의 세계로 몰아갔다.
그렇게 방황하던 샤오강은 1992년 꿈속에서나 그리던 서구 모더니즘의 본향을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다.
독일과 프랑스에 머문 3개월간 매일 빵과 생수 한 병을 들고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로부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강력한 힌트를 얻었다.
[대가족] 시리즈의 출발
귀국길에 부모님을 뵈러 고향에 들른 장샤오강은 집 안의 물건들을 뒤적이다 독특한 매력이 담긴 물건을 발견했다. 문혁(文革)시기 부모님의 사진 그리고 당시 가족사진들이었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감정과 개성을 삭제한 채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엄숙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사실, 당시는 온 나라가 뒤집어지는 대혼란 속에 있었다. 그러나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은 오히려 차분하다 못해 멍한 듯 보였다.
그것은 온갖 희노애락이 다한 끝의 몽롱함이랄까...
그 고요함 속에는 각양각색의 심리적 콤플렉스가 숨어 있었다.
그들의 표정, 옷, 머리스타일 등은 모두 획일적인 집단주의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독특함은 바로 여기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우리는 집단주의 세례를 받은 세대다. 그러한 미묘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는 안다.우리세대와 전통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 직장동료와의 관계, 사적인 관계는 모두 가족식이었다. 가족사진이라는 시각적 방식으로 이것을 처리하는 것보다 더 적합한 방법은 없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든 것이 애매모호, 알쏭달쏭한 이들의 특징을 예민하고 미묘한 언어로 정확히 담아낸 <대가족>시리즈는 미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띠었다.
계획대로 중국적이고 개인적이며 현대적인 작품을 완성한 그는 화가로서 개인적인 목표를 성취했을 뿐 아니라 홍콩, 유럽, 미국 등 서방의 예술 무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날이 갈수록 작품의 깊이는 더해졌고, 전시 요청은 계속 이어졌다.
“[대가족]시리즈를 시작했던 1994년 나는 내가 화가라는 사실을 뛰어넘고 싶었습니다. 관념예술가가 되고 싶었죠. 표현하려는 것 역시 일종의 관념이었습니다...”
마을 전체에 마오쩌뚱 사상을 전파하던 확성기, 환상이었을지언정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있으리라 나라 전체가 들떠 움직이던 시절,
희망이 꺼져버린 전구,
설레는 이상과 현실 앞의 무능력을 함께 선사했던 철학 책,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코드 빠진 TV,
여전히 고통스러운 세상을 견디지 못하는 여린 생명,
그 와중에도 자식에게 희망과 꿈을 심고 살아가는 부모와 천진난만하게 자라는 아이...
그는 때로는 붓을 들고, 때로는 펜을 잡고 마음을 직접 건드리는 서술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다.
아프고 답답하지만 나름대로 즐거웠던 과거의 시간처럼.
아름다운 中國文化(62)
변혁기의중국그림紅衛兵少女
홍위병소녀 48 × 58 cm
祁志龍(1962~ ), 내몽고 呼和浩特人
<작품유물 제공 및 해설>
작품유물 제공 및 해설: 柏山金悳基
-울산 출신 부산사람. 동래고. 고려대 농경제과 졸업. 철학박사
-1994년 中国創業投資 1세대 기업인
-현재 중국 칭다오에서 기업경영과 고미술 연구에 정진하고 있으며
韩·中文化 단체 및 중요대학에서 열강
-부산에서「八金山美術館」을 운영
동양 3국의 서화, 도자, 금동기 등을 무료 감정하고 있음.
연락처
핸드폰: +86-185-6155-2907(中国) +82-10-9344-3688(한국)
이메일: site803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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